아래 제가 올린 번역 글(Killing the Euro)에 좋은 분('개패'님)이 질문을 남겨주셨기에.. 답글 대신 새로운 글을 올려봅니다.  질문의 요지는 남유럽 국가들이 방만한 '선진국 놀이'로 위기에 빠진만큼, 이제 디레버리지라는 채찍질을 당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유로존 위기가 사실은 '쌍방과실'이기에, 남유럽 국가가 고통스러운 긴축을 하는 한편 북유럽 국가도 남유럽의 고난을 구하기 위해 노력(=양적완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밝혀보겠습니다.

Killing the Euro : http://estin.net/forum/talk/id/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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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통화동맹이란?

지난 2010년 2월 그리스 정부가 재정수지의 악화를 선언하면서 시작된 유럽 재정위기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더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듯 하다.  그리스 정부는 어떻게 해서 그토록 엄청난 재정적자를 기록하게 되었으며, 또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1999년 출범한 유럽통화동맹(The European Economic and Monetary Union, 이하 'EMU', 유로화 시스템)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EMU의 첫 번째 목표는 단일한 공동시장을 출범시켜, 참여국가들의 경제를 부양하는 것이며, 또 다른 목표는 환율의 변동을 억제하여 안정적인 경제운용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공동시장을 출범시켜 ‘파이’를 키우고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줄이는 것이 EMU 출범의 목적이었다. 

이런 목적 하에 1998년 5월 1~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최된 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서 1999년 유럽통화동맹(EMU)을 출범시키는 데 합의하고 EMU참가국(1차 참가국은 모두 11개국)통화의 유로화 전환 환율을 결정했다.  1998년 7월 EMU의 핵심기관인 유럽중앙은행(ECB)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업무를 개시하면서 동시에 주화 및 지폐의 제작에 착수했다.  유럽중앙은행의 출범이 필요했던 것은 동일한 통화를 이용함에 따라, EMU 가입국들은 독립적인 중앙은행이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즉 유로화라는 동일한 통화를 사용하는 순간, EMU에 가입한 국가들은 중앙은행의 업무가 사실상 정지되며 유럽 중앙은행의 정책금리 결정을 수용하는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EMU 가입국가간에 정책금리가 다른 경우를 생각해보자.  독일의 정책금리가 2% 그리고 스페인의 정책금리가 1%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 나라 사이에 환율이 고정(=유로라는 단일 통화 사용)되어 있으니,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은 ‘0’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경우 헷지펀드 등의 투자자들은 스페인에서 돈을 빌려 독일 채권에 투자하는 전략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즉 1%의 이자로 자금을 조달해 2% 이자를 주는 채권에 투자하니, 이 투자자는 1%를 차익으로 가지게 된다.  게다가 돈을 빌려 투자했으니, 원금은 한푼도 들지 않는 말 그대로 봉이 김선달처럼 아무 자본 없이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된다.  결국 이런 투자자들의 행동으로 인해 독일은 정책금리를 인하하고, 반대로 스페인은 정책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스페인은 어마어마한 자금 수요가 발생하면서 이자율 상승 압력이 생길 것이고, 반대로 독일은 채권 매수세가 몰려들어 이자율의 하락을 촉발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EMU 가입으로 남유럽 국가도 '저금리' 수혜 입어

이런 까닭에 유럽 중앙은행이 설치될 수 밖에 없었다.  유럽중앙은행은 최강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독일의 도시(프랑크푸르트)에 설치되었고, 통화정책에 있어서 독일은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그런데 이는 EMU에 가입한 약소국들이 원하는 바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독일의 높은 신용도와 낮은 물가 상승률로 인해, 독일의 정책금리는 유럽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EMU에 가입한 국가들은 모두 독일과 같은 금리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전보다 훨씬 더 적은 이자를 지급해도 되는 ‘이권’을 누리게 된 셈이다.

자료: 블룸버그.

 

EMU, 독일 등 북유럽 국가에도 큰 혜택 줘

약소국에만 EMU 체제가 도움이 되는가?  그건 또 아니다.  대신 독일이나 프랑스 등은 엄청난 시장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2010년 말 현재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는 나라의 총 경제규모는 12.2조 달러로, 미국(14.5조 달러)에 비해 약 2.3조 달러 작을 뿐이다.  즉 미국에 이은 세계 제 2위의 경제권이며, 이 거대 경제권 안에서 자유무역 및 자유로운 자금의 이동이 이뤄지기 때문에 독일은 일종의 ‘시장확대’라는 이점을 누리게 된 것이다. 

특히 독일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혜택을 누렸다.  일단 남유럽국가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ECB가 미 연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정책금리를 인상했지만, 대신 시장 확대를 계기로 기업들의 경영환경이 크게 개선되었던 것이다. 이 결과, 독일은 세계 No.1 경상수지 흑자 국가로 부각되는 한편 세계 No.2 수출 대국의 자리를 획득하게 되었다.

 

자료: IMF, World Economic Outlook(2011.9).

 

맺는말 : 유럽 재정위기는 쌍방과실

남유럽 국가들만 EMU 출범으로 큰 혜택을 누리고, 이들이 자기 뜻대로 방만하게 '선진국 놀이'를 한 결과 망해버렸다면.  그리고 그들이 자구노력도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런 나라는 망해버리게 놔두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EMU 출범에 따른 뜻하지 않은 저금리 환경의 출현은 각 국 정부 당국이 완전히 통제하지 못할 거대한 '통화공급의 증가'를 촉발시켰다.  남아 있는 정책수단이라고는 '재정정책' 밖에 없는 상황에서.. 실제로 남유럽 국가들은 재정수지를 흑자로 유지하는 등 위기 이전까지 재정긴축 정책을 펼쳤다.  그렇지만, 물밀듯 해외자금이 국내로 쏟아져 들어오는 상황에서 재정긴축 만으로 '버블'의 형성을 막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더 나아가 남유럽 국가만 EMU 출범으로 득을 본게 아니라, 북유럽 국가도 이에 못지 않은 큰 득을 본 만큼.. 충분히 남유럽 국가에 대해 지원할 여지가 있다.  당장 독일부터 남유럽 국가에 자국제품을 수출하면서 엄청난 경상흑자를 기록하지 않았는가?  또 유로화가 기축통화의 패권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리더쉽이 매우 강해졌다.  뿐만 아니라, 지금 위기 과정에서 모든 유럽 국가는 독일 등 북유럽국가에게 지원을 요청하고 자연스럽게 독일의 패권을 인정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남유럽 국가만 가혹한 재정긴축을 수용하고, 수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마이너스 성장을 감수해야 하는가?  이건 함께 저지른 공동 범죄에 대해, 종범만 책임을 묻는 '불공평'의 극치가 아닐까?  북유럽 국가들이 이때 남유럽 국가를 지원(=양적완화)해 남유럽 국가가 살아날 수 있게 도와준다면, 오히려 재정동맹으로의 발전이 가속화되고 또 기축통화 패권에 대한 오랜 꿈이 실현될 수 있지 않을까?  독일 국민과 지도자들의 전향적인 자세 전환을 애타게 촉구해 본다.

자료: IMF, World Economic Outlook(2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