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집에 들어갔더니 집사람이 이 이야기를 해 주더군요.
50대 남성이 남영역에서 투신 자살했다고. 이 사람은 IMF가 오기 전까지 은행원으로 근무했고, 명퇴 이후에 노래방 등 자영업을 시도하다 실패, 결국 살기가 너무 힘들다며 스스로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슬픈 이유는 남의 일 같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전도 유망한 직장인에서 해고 그리고 2번의 사업실패, 공공근로...삶의 마감에 이르는 경로는 나의 이야기가 될 가능성 100%입니다. 우리는 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요? 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요? 출근 길에 예비후보랍시고 명함 돌리고 접근하는 이들이 정말 꼴보기 싫더군요. 남은 유족들은 무엇으로 살아갈지, 그들에게 이 나라는, 이 사회는 어떻게 비춰질지 정말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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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전직 은행원의 슬픈 죽음
2012-01-12 11:18
97년 환란때 구조조정
노래방하다 퇴직금 날려
생활고에 아내와 잦은 다툼
공공근로 마저 일감 줄어
미안하다…”열차에 투신
지난 11일 오후 12시22분께, 서울 지하철 1호선 남영역에서 K(55)씨가 서울역 방향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열차를 향해 몸을 던졌다. K씨는 현장에서 바로 숨졌다. K씨는 왜 열차에 몸을 던졌을까.
12일 서울 용산경찰서에 따르면 K씨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로 은행권이 대대적 구조조정을 시작하기 전까지 기업은행에서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1997년 12월, 당시 K씨는 갓 40세가 됐다. 그러나 1997년 12월부터 피바람이 불었다. IMF 사태 발생 후 100일 동안 전체 정원의 16%가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날라갔다.
퇴직금으로 K씨는 노래방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게 쉽지 않았다. 은행원이었던 그가 술취한 이들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 노래방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바로 퇴직금 중 상당액을 날려야 했고, 가게 문을 닫아야 했다.
그때부터 K씨는 술 없이는 잠을 잘 수 없었다. 항상 술에 취해 있어야 했다. 당연히 아내와 싸우는 일도 많아졌다.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서 퇴직금 등 모아놓은 돈을 점차 바닥을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집을 줄여 생활비를 마련해야 했다.
아이들은 커갔고, 교육비 등은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어쩔 수 없이 아내는 식당일을 시작해야 했다.
그렇게 10년 넘는 시간이 흘렀다.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던 K씨는 2010년부터 구청에서 운영하는 공공근로사업에 나갔다. 공공근로지만 열심히 했다. 고정적 일은 아니었지만, 열심히 하면 월 130만원까지 손에 쥘 수 있었다. 다만 최근 날이 추워지면서 공공근로 일거리가 크게 줄었다. 당연히 K씨는 일하는 날보다 쉬는 날이 많았다.
K씨와 함께 공공근로를 했던 동료는 “생활고와 가정문제로 ‘살기 힘들다’는 말을 자주 내뱉곤 했다”며 “최근에는 아예 일감이 없어 4일간 일을 못 나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급기야 K씨는 작년 크리스마스 전에 집을 나와 여관에서 생활했다. 며칠에 한 번씩 집에 들러 밥만 먹고 나갔던 그였다. 지난 9일에도 집에 조용히 들어와 점심을 해결하고 나왔다.
이 식사가 K씨가 그렇게도 같이하고 싶었던 가족이 있는 집에서의 마지막 식사였다. 그것도 아무 가족도 없이 혼자, 쓸쓸히 먹었다.
9일 오후 K씨는 집에서 홀로 식사를 한 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K씨는 아내에게 두 마디를 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였다. 자살을 암시하는 말이었다. 짧은 두 마디. 그가 가족에게 남긴 유일한 말이었다.
그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이후에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틀 뒤 그는 열차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K씨의 부인은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김재현 기자> / madpen@heraldm.com






댓글(8)
에구 모진사람 같으니라구, 남아 있는 사람들은 어쩌라구..
아무쪼록 좋은 곳으로 갔기를 바랍니다.12.01.20 09:31 Ⓡ
먹먹하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12.01.20 10:35 Ⓡ
안타까운 일입니다.ㅠㅠ 고용 없는 성장, 나날이 커지는 빈부격차. 오늘 넥타이 매고 회사 다녀도 어느날 밀려나면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요즘 경제지표를 보다 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어느새 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 몰렸지 싶어서요.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2.01.20 13:35 Ⓡ
남은 가족들이 잘 버티어 낼수있으면 좋겠네요12.01.21 13:57 Ⓡ
제가 너무 세상을 모르는 걸까요? 전 가끔 이런 결정을 하시는 분들 얘기를 들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란 생각보단 죽을 만큼 그 자존심과 이기심을 버리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남은 가족분들께 위로의 말을 전해드리고 싶네요...12.01.23 23:28 Ⓡ
저도 처자식을 데리고 먹고사는문제를 너무 자존심과 이기심으로 쉽게 생각하는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IMF때 없어졌던 은행에 다녔던 사람을 알고있는데, 40은행원리라면 돈과 은행시스템에 대한 기본적 개념이 있기때문에 중소기업의 경리부나 채권추심, 저축은행등으로 대부분 많이가서 급여가 예전같진 않지만 그럭저럭 다 살고 있다고 합니다. 도대체 기업은행에서 15년을 직장생활하며 무엇을 보고 배웟길래 중소기업에 들어가서 돈만지는 일이라도 할만한 능력도 없었던 것일까요.. 주변 퇴직 은행원이라면 부동산이나 경매쪽도 잘 알아서 그쪽으로도 많이 나가던데 참.. 답답합니다. 처자식 먹여살리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곳에 큰돈을 투자하는 그런 대담한 짓을 왜 하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네요. 12.01.25 17:11 Ⓡ
문효님이나 테레사님 뜻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공공근로까지 나가시던 분인만큼 말씀처럼 의지가 없었던 분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사는 게 너무 힘들었겠지요. 힘든 하루하루를 이어나갈 이유가 없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12.01.25 22:16 Ⓡ
슬픈 이야기 입니다. 정말 남의 일이 아니에요.12.01.26 12:08 Ⓡ